[데스크 칼럼] 여의도엔 '재즈정신'이 필요하다

입력 2023-06-20 17:59   수정 2023-06-21 00:11

나이 들어 재즈에 푹 빠진 친구 손에 이끌려 얼마 전 서울 한남동에 있는 재즈클럽을 찾았다. 평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술잔 기울이는 걸 좋아하는 터라 “시끄러운 라이브 음악은 싫다”고 버텼지만, 친구는 막무가내였다. 한번 경험해보면 다시는 싫다는 소리 하지 않을 거라면서.

재즈클럽은 생각했던 것보다 아담했다. 연주자들의 표정 하나, 손놀림 하나 놓치지 않고 눈에 담을 수 있는 거리에 무대가 있었다. 입 다물고 연주만 들어야 하는 클래식 공연장과 달리 술과 밥을 놓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첫 만남에 이런 화음이…
밴드는 5인조였다. ‘스캣’(목소리로 연주하듯 소리 내는 창법)이 일품인 여성 보컬과 웬만한 색소폰보다 풍성한 소리를 내는 하모니카가 앞에 섰고, 이 바닥 ‘고수’인 게 틀림없어 보이는 피아노와 드럼, 베이스가 둘을 에워쌌다.

한 시간가량 이어진 연주 내내 다섯 사람은 한 몸처럼 움직였다. ‘얼마나 오랫동안 같이 연습해야 화음이 저렇게 착착 들어맞을까’란 생각이 안 들면 이상할 정도였다.

이윽고 시작된 ‘솔로 타임’. 스포트라이트가 하모니카를 비추자 다른 악기는 뒤로 빠졌다. 주연이 빛나도록 리듬과 템포만 받쳐주는 조연이 된 것이다. 이렇게 드럼, 베이스, 피아노가 만들어준 여백 위에 하모니카는 멋진 그림을 그렸다. 피아노가 바통을 이어받자 하모니카는 뒤로 물러났다. 다섯 사람은 이런 식으로 한 시간 내내 합쳤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그 자연스러운 하모니에 몸을 맡기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곡이다.

관객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던 보컬은 다른 연주자들을 소개하면서 “오늘 처음 합을 맞춘 사이”라고 했다. 깜짝 놀랐다. 합주라는 게 아무런 연습도 없이 ‘이심전심’만으로 된다고?

친구는 별일 아니라는 듯 덤덤한 표정을 짓더니 재즈에 대해 한 수 읊었다. “재즈란 게 원래 그런 거야. 각자 마음 가는 대로 연주하는 거지. 즉흥연주가 재즈의 본질이거든.”
하모니의 비결은 배려와 양보
다음날 재즈를 담당하는 오현우 기자에게 물었더니,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답을 들려줬다. 고수들은 첫 만남 때 합주한 걸 앨범으로도 낸다니 ‘즉흥연주=재즈’, 이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재즈 뮤지션들이 정말 마음 가는 대로 연주하는 건 아니란다. 이들이 첫 만남에도 좋은 화음을 낼 수 있는 건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 양보를 뜻하는 ‘인터플레이(interplay)’란 엄격한 규칙을 지키기 때문이다. 마음 가는 대로 연주한다는 건 어디까지나 이 규칙의 테두리 안에서다.

누군가 혼자 돋보이려고 다른 악기를 누르려는 순간, 재즈는 소음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가 말 그대로 ‘마음 가는 대로’ 치겠다며 합의된 코드 진행 범위를 벗어나는 순간, 합주는 불협화음이 된다는 얘기다.

지금 우리 사는 세상엔 이런 ‘특급 연주자’들이 얼마나 있을까. 저마다 주인공이 되겠다고 상대방을 깔아뭉개는 정치인이나 자기 일 아니라고 국민과 기업의 호소를 들은 체 만 체하는 공무원, 세상을 구한다면서 정작 시민 불편 따위는 아랑곳하지도 않는 노조는 하나같이 B급, C급 연주자다.

이런 ‘엉터리’ 연주자들을 무대 밖으로 끌어내리고 빈자리를 존중과 배려라는 ‘재즈 정신’ 가득한 연주자로 채우는 일, 이것이 극심한 편 가르기와 불신에 신음하는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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